농막일기 33 -아직은 때가 아니다
< 들에 산에 봄의 전령, 쑥국 한냄비>
<작년 옮겨 심은 머위가 혹독한 겨울을 이기고 빼꼼>
<장한 녀석들!!!>
똑똑똑~~~
봄비가 노크하는 소리. 죽은 듯 겨울을 이겨낸 땅의 모든 생명을 다시 일깨우는 봄비.
이 비가 깊숙한 곳까지 스며들어 동면하던 땅을 깨우고 흙박테리아도 깨우고 풀씨들도 눈을 뜨고 지렁이도 봄맞이하러 꼬물꼬물 기어나오리라. 지금까지는 그랬다 그러나 아니다. 적어도 올봄은. 풀씨도 지렁이도 개구리나 도룡농, 메뚜기 벌나비야 올해는 그냥 땅 속 깊숙히 좀 더 숨어 있거라. 지금은 때가 아니다. 독을 머금은 빗방울의 초대를 거절하라
환경의 파괴로 인해 도시가 점점 사람이 살기 어려운 곳이 되어도, 천재지변으로 도시의 모든 기능이 마비되어도 농촌은 최소한의 생활을 할 수 있는 도피처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건 큰 오산이었다.
방사능 오염! 세슘이니 방사성 요오드같은 생소한, 그러나 그 명칭이 공포의 기호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는 상황이 된 지금 그것을 피할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 도시나 농촌, 제주도까지 그 어디라도 안전한 곳은 없다. 산 자들이 얼마나 무기력한 존재인지....
오랜만에, 거의 반 년만에 농막에 시간이 안 돼 당일치기로 다녀왔다. 늘 허술하고 엉성한 집이라 오래 비워 두었어도 특별히 더 상한 것 같지는 않았다. 방사능 먼지가 하늘을 뒤덮고 있을지라도 봄은 왔다. 얼치기 농사지만 그래도 밭에 지난 해 심어두고 뽑지 않고 방치했던 고춧대며 비닐을 치우고 흙을 뒤집어 파종할 준비를 마쳐야 한다.
농막 청소를 대충하고 아궁이에 불도 지핀 다음에 제일 먼저 한 일이 쑥을 캐는 일이었다 파랗게 올라오는 연한 쑥. 세슘물이 내리기 전에 얼른 한 주먹쯤 캐서 가지고 간 된장을 풀어 쑥국을 끓여 먹었다. 항상 해 보고 싶었었는데 올해 처음 해 보았다. 향긋하고 연한 쑥국. 말이 필요할까? 이런 소소한 즐거움을 시간이 지나면 다시 찾을 수 있을지?
세상의 시시비비에 무관심하기. 세상의 가치에서 몇 발자국 물러서 있기. 마음의 평화를 구하는 삶의 한 방식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도시로부터 한발자국 떨어져 사는 것도 하나의 방편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시방은 물러서 있을 공간이? 오랜만에 농막을 방문하면서 나의 歸去來辭는 무기한 보류다. 지금은 때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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