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막일기

농막일기 44 -봄가뭄

sunnyyoung 2012. 6. 2. 15:41

 

 

 <농막에 주인이 하도 안 가니 심어 놓은 나무를 파 가기도 하고 차를 돌리느라 나무를 쓰러뜨리기도 하고... 각목을 사다가 문이라고 하기엔 문의 기능이 전혀 없는,-차 금지용-문을 엉성하게 달았다. 한 일 년 만에 우연히 부딪친 옆집 밭주인 부부(이 사람들도 주말에만 옴)가 문을 단다고 욕을 하며 달려들어서 - 내 땅에 문을 다는데 왜 욕을 하며 덤비는지 나도 모름- 저 밑에 입구에 못 달고 안으로 한참 들어 와 어중간하게 덜렁, 싸움에 이길 자신이 없어서... 눈물이 날만큼 속상했다.>

 

 

 

'누구한테 머리를 숙일까,

사람이 아닌 평범한 것에

많이는 아니고 조금

벼를 터는 마당에서 바람도 안 부는데

옥수수잎이 흔들리듯이 그렇게 조금

'''''''''

 

                -김수영의 '꽃잎' 중에서 첫 연-

 

오랫동안 벼르다가 농막에 가면 위의 김수영 시인이' 사람이 아닌 평범한 것에 머리를 숙이려' 하듯 짐을 내려놓자 마자 나도 사람이 아닌 땅을 향해 머리를 숙이고 싶어진다.

가을 코스모스처럼 가냘프게 서 있는 목 마른 고추 모종과 토마토 모종, 난장이 종자인 듯 땅과 마주하고 있는 깻잎과 처음 심었을 때와 거의 같은 상태로 죽지 못하고 땅에 꽂혀 있는 수박참외오이.

기상 관측 이래 5월의 기온이 105년 만에 최고라는 이 뜨겁고도 가문 봄날, 물 한 번 못 주고 땅에다 꽂아 놓은 것들에 대한 죄스러움으로,

 

지난 5 년 간 모종을 심어 놓고 오면 적절하게 비가 와 줘서 그런대로 잘 커 주었다. 그런데 올해는 그간의 경험을 깨뜨리고 여름같이 뜨거운 날씨와 가뭄이 계속된다. 이틀에 걸쳐 비가 올 것이란 일기 예보가 있어 물도 조금 주고 왔는데 웬걸 날씨가 여전히 쨍쨍하기만 하다. 그럴 줄 알았으면 오기 전에 물을 듬뿍 주고 왔을텐데.

 

세상이 해가 바뀔 때마다 무서운 속도로 변하고 있음을 농촌에서도 실감한다. 도시의 모든 것들은 순식간에 바뀌어도 농촌은 천천히 바뀌는 것 같았는데 이제는 농촌도 농부들의 축적된 경험을 뒤집는, 급격한 변화들이 감지된다. 나의 농막도 물론, 변화 -惡化-가 크다

 

날벌레는 있어도 모기는 없어 신기했는데 이번에 가서 모기에 처음으로 물려 봤다.-기온이 0.5도만 상승해도 모기 군집이두배로 증가한다고 한다- 농막의 흙담벽에 전에 못 보던 자벌레들이 여기저기 기어 다닌다.  갑자기 자벌레가 왜 이렇게 많아졌는지? -자벌레는 綠陰樹를 공격하여 잎을 먹는데 나무에 심각한 해를 끼치거나 파괴한다고-농막 입구에 산에서 내려오는 물맛 좋은 물이 있어 식수 해결은 물론 집에 갈 때 물통에 담아 가서 아끼며 마셨는데 지난 번 떠 간 물에 벌레가 생기는 바람에 이 물을 포기하고, 사서 마셨다. 나즈막한 뒷산은 뒤늦게 주인들이 나타나 인삼씨를 심어놓고 경고장을 써 붙여 놓고, 약병과 쓰레기가 나의 밭에 굴러 다닌다. 서울과 두어시간 거리여도 전화도 인터넷도 안 되는 평범한 마을. 휴가철에도 사람들이 별로 없던 곳이었는데 그래서 참 좋았는데... 지난 석탄일 연휴에 사람들이 차를 여기저기 세워놓고 무리로 몰려 다니며 냇가로 산으로 뭔가를 채취하느라 여념이 없는 모습을 보며 나는 좌절했다. 모두 올 들어 처음 만나는 상황들이다.

 

더 불편하고  더 외진 곳을 자꾸만 떠 올리게 된다.

물론 혼자 감당할 수 없을 것임을 알지만 그래도 상황이 더 나빠진다면? 

무식해서 용감한 나. 아니 경험이 있으니 시행착오를 덜 겪을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어떤 어려움으로  어떤 괴로움을 당할 지  잘 모르지만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