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막일기 46 -말벌과의 대전투(大戰鬪)
우리는 사진이 가장 정확하게 사실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고 착각하기 쉽다. 특히나 자연을 매개로 하는 사진인 경우에.
그러나 전체와 무관하게 일부분만 찍은 사진은 결코 사실이나 진실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아니 왜곡의 산물일 수도 있다.
찍는 이의 의도가 담겨진 것이기에 다양한 해석과 감상의 대상이다.
아래의 사진들은 뭘 보여 주려고 찍었을까?
농막과의 밀월 기간이 끝난 것 같다.
풀도 예쁘고 벌레도 사랑스럽고 지렁이나 무당개구리도 귀엽고 벌도 익충이고 나비와 메뚜기들의 존재는 내 땅이 오염되지 않은 증거라고 좋아했다. 흙이 떨어지고 구멍이 숭숭난 농막의 흙벽이 인공적이고 화학제품을 쓰지 않은 친환경적이고 건강에 가장 좋은 상태라고 생각했었다. -그건 물론 사실이다- 그런데 이제 이들이 차츰 적으로 보이기 시작하는 판에 적과의 한 판 싸움이 붙었다. ㅎㅎ
벼르다가 오랜만에 일도 좀 도와 줄 지인들과 농막에 갔다. 억수로 비가 온 뒤라 개울물이 불어 건널 수가 없어 병지방에 있는 지인의 집에서 자고 다음날 물이 좀 줄어서 농막에 가니, 갈대가 온통 밭을 점령하고 있어 폐가를 방불케 한다. 그러나 이건 서막에 불과하다. 방문을 여니 아!!!! 아뿔싸$@*%! 말이 안 나온다. -무서워서 사진도 못 남겼다-손님들은 앉지도 않고 그냥들 떠나고, 이 사태를 해결해야 할 주인만이 혼자 남았다.
방 안 서까래 위에 말벌들이 아주 큰 호박덩이만한 집을 지어 새끼를 낳아 기르고 있었다. 꿀벌도 아닌 말벌들은 육식을 하고 꿀도 모으지 않으며 벌침도 한 번에 여러방 쏘아 독으로 살인까지도 하는, 작지만 무서운 해충이지 않은가? 그런 벌들 수십마리가 집을 차지하고 있었다.
겁도 없이 벌과 한판 전쟁을 결심했다. 어쩌랴? 피할 수가 없는 상황인데. 눈 뜨고 녀석들에게 집을 뺏기게 생겼으니. 긴머리를 틀어올려 정수리에 붙이고 후드가 달린 옷의 모자를 쓰고 그 위에 야구 모자를 덧 쓴 다음에 일할 때 쓰는 차양모자까지 모두 세 개의 모자를 썼다.-모양을 상상해 보시라 ㅎ- 요녀석들은 사람을 공격할 때 정수리를 노리거나 아니면 목 같은 데를 우선 공격한다.
다행히 실내 아궁이 위쪽에 벌집이 있어 일단은 신문지에 불울 붙여 한 삼십분 정도를 계속 태웠다. 방안이 연기로 자욱하니 벌들이 정신이 없는 틈을 타서 가스 토치에 불을 붙여 방 밖으로 나오는 놈들에게 화염 방사를 해서 쫒거나 화장을 시켰다. 새끼들이 있으니 가스불도 무서워 하지 않고, 줄기차게 다시 방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벌들이 주로 출입하던 구멍으로만 집요하게 오는 바람에 많이 퇴치할 수 있었다. 종족을 보존하려는 본능은 모든 생명체에게나 다 같다. 그러나 웬만하면 작은 곤충이라도 죽이지 않으려 하는데 이 말벌은 사람의 생명까지도 위험하니 어쩔 수 없이 수많은 살생을 했다. 벌들아 정당방위니 용서하길...뭐 이런 마음으로 자위하며 한 서너 시간의 전투 끝에 방에 있는 벌집을 떼어 아궁이에 넣고 태워버렸다. 가스 토치와 연기로 그 수많은 말벌떼를 퇴치한, 무모하고도 목숨을 건 전투를 끝냈다. 맑은샘! 참 대단한 여전사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이 전쟁에서는 승리했지만 아직도 싸워야 할 적은 수없이 많다. 어쩌면 백기를 들지도 모를 것 같은......
사진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요? 한여름 생명력 넘치는 초록의 풍경 사진으로 보이지는 않았겠지만...
맨 위의 사진은 심은 작물이 전멸하고 풀만 남아있는 밭입니다. 비닐 안 깔고 신문지만 덮었죠. 나머지는 갈대로 뒤덮힌 밭의 풍경이고,
풀과 가뭄과 무영양과 무관리로 인해 심은 작물들이 겨우 살아 남아 있는 모습, 그리고 맨 마지막은 먹을 것이 없어 국수를 삶아 고추장에 가지고 간 자두, 현지에서 딴 깻잎과 고추와 산딸기를 올린 모습으로 먹음직해 보이지만 별로 맛도 없고, 그저 벌들과의 싸움을 끝내고 시장한 배를 채우는 목적만 달성했죠.
풀 숲에서의 작물들의 생명력, 무공해의 고추와 토마토를 말하려는 것이 아닌 사진 속의 것이 봄에 심은 것들 중에 유일하게 남은 것에 대한 나의 '실망'을 찍은 것입니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