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막일기

농막일기,8 -이사벨라

sunnyyoung 2010. 1. 30. 23:07

 

 

이곳 강원도는 9월쯤 부터 다음해 5월 까지는 아궁이에 불을 지펴야 한다. 해가 지면 주위 온도가 급격하게 떨

어져 불을 피우지 않고 오래 누워 있으면 곧 동태가 되어 버린다. 구들방이니 땔감은 필수다.

 

 
         <눈 내린 겨울 농막의 창을 통해 보이는 풍경>
 

여기 저기 죽은 나무나 꺽여 쓰러진 나무들이 지천으로 있어 주워다가 땐다. 굳이 나무를 사지 않아도 아직까지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나무를 사면 자르고 쌓고 옮기고 하는 일이 더 문제가 될 것 같다. 허름한 시골집, 장작을 패서 집의 담벼락 한 면에 가지런히 쌓아 놓은 벽을 보면  건축의 미학을  넘어서는 아름다움을 느낀다.  나무를 쌓는 가장의 가족에 대한 뜨끈뜨끈한 마음과, 켜켜이 줄 맞춰 쌓아 준 장작으로 군불을 때 주고 그 따뜻한 방에 누워 평화롭게 잠들 수 있는, 지금 내게 없는 소박한 행복의 온도가. 도시에서는 별로 필요치 않았던 거칠고 못이 박힌 손이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 손인지 나는 이곳에서 처음으로 알았다.

 

이리저리 쓰러진 나무들을 서투르게 주워다 어설프게 불을 부친다.  오래 비워 둔 아궁이가 마르고 구들장이 달궈 지려면 몇 시간을 때야 된다. 그러나 한 번 달궈지면 쉽게 식지 않는 방. 세상의 모든 일이 처음엔 다 쉽지 않듯, 그러나 일단 이루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수월해 지는 것 것처럼. 집에서 모아 온 신문이 요긴하게 쓰인다. 이 곳에 오면 도시에서 버려 지는 모든 것이 다 용도가 있다. 거리를 걷다 쓸모있음직한 것들을 보면 창피한 줄도 모르고 주워다 차에 실어 놓는 버릇이 생겼다.

 

긴 시간 아궁이 앞에서 불을 땐다.  나비만큼이나 큰 나방이 한마리가 아궁이 앞을 떠나질 않는다. 활활 타는 불꽃을 향하여 돌진한다. 거의 날개가 불길에 탈뻔 하다 간신히 피해 나오길 반복한다. 잡아서 쫒아 내려는 내 손길 앞에서, 불 앞에서, 위태로운 날갯짓을 하며 오로지 불꽃만을 향한다.  노란색의 날개에 검은 점무늬가 있는,  이사벨라 불나방 이다.' 이사벨라'?

성녀 이사벨라, 홍콩영화 제목 이사벨라, 영국출신 여성 여행가 이사벨라, 배우 잉그리드 버그만의 딸 이사벨라......이렇게 예쁜 나방이 이름이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이 불나방은 암컷임이 분명하다.

 

어쩌자고 목숨을 거는 것일까? 살아 있는 모든 것이  지키려 하는 것을.

목숨을 걸만큼의 절박한 갈구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의미있는 일인가? 살면서 한 번이라도 경험해 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우리에게 지금이라도 그런 기회가 온다면 저 이사벨라와 같은 맹목성이 남아 있을까?

 

 확신에 차 단정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는 이사벨라만도 못한 삶을 살아온 건 아닌가 몰라.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제2번 D단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