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막일기 9, -채소나 과수 심기에 관한 이야기, 첫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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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의 적막을 닮은 햇살이 문틈으로 살며시>
위의 사진은 농막의 실내 일부이다. 반은 황토 침대로 되어 있고 그 가장자리는 생나무로 둘렀다. 나무에 아무것도 바르지 않고 때가 타면 타는대로 얼룩이 지면 지는 대로 그냥 두려 한다. 무엇이든 최대한 가공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고 싶다.
서양 우스개 소리에 '별장과 애인과 요트는 소유하기 전에는 꿈과 동경의 대상이지만 소유하게 되면 짐이 되어 버린다' 말이 있다.
우리가 무언가를 동경하고 상상할 때는 아름답지만 그것이 이루어지면 현실이 된다. 현실은 마땅히 치루어야 할 의무와 책임이 뒤따른다. 전원생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즐거운 짐이지만.
한 600평 정도 되는 땅에 뭔가를 심기는 해야 하는데 농사를 한 번도 지어 본 적이 없다. 시골에서 살아 본 적도 없다. 그런 형편에 농약과 제초제 비료를 전혀 쓰지 않는다. -직업으로 농사를 지으시는 분들에게는 너무 죄스럽지만 나는 귀농을 한 것이 아니니까 이해하시기 바라며-
그렇다면 나의 밭은? 말할 것도 없이 잡초의 천국, 곤충의 천국, 그런 속에다 온갖 과실수 묘목을 닥치는 대로 심었다 아마 수량으로 따지면 한 100주 이상 될 것이다. 매실 복숭아 대추 감나무 포도 밤나무 뽕나무 자두 앵두 홍단풍 은행나무 벚나무... 좀 아는 이름은 거의 망라해서 사다 심었다. 죽으면 할 수 없고 살아서 커 주면 기쁜 일이다 라고 생각했다. 자주 갈 수도 없고 농사 경험도 없고 일손도 없는 내가 취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지금도 생각한다. 어디선가 들은 근사한 표현을 빌리면 '방치농업' -속칭 냅둬농법ㅎ- 이라 하여 나무가 자기 스스로의 생명력으로 살아 남도록 하는 것이라 한다. 그 중에 일부는 없어지기도 하고 일부는 죽기도 하여 지금 한 삼십여주 남았을까? 세어 보지 않아 잘 모르겠다. 이번 겨울 혹독한 추위에 그나마 살아서 -작년에 복숭아가 열리기도 했는데, 물론 무비료라 다 떨어져 버렸지만 꽃을 본 것만으로도 감격스러웠다-커 주던 녀석들이 올 봄에 살아있어 줄 지 너무나 궁금하다.
-고은 시인의 출판 기념 인터뷰 중에서-
'원숙한 노년으로서의 금도를 유지하는데만 치중해 삶을 잠들게 할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나는 여전히 철이 들지 않은 청소년같은 문제의식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내 삶의 후반기는 전반기의 결산에 머무는 게 이니라 새로운 질풍노도의 시기가 될 것 같다'
고 소감을 밝혔다
고은 시인은 75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