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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 < 좌탈(坐脫)> ㅡ김사인

sunnyyoung 2015. 4. 6. 18:28

 

좌탈(坐脫)

 

          김사인

 

때가 되자

그는 가만히 곡기를 끊었다.

물만 조금씩 마시며 속을 비웠다.

깊은 묵상에 들었다.

불필요한 실들이 내리자

눈빛과 피부가 투명해졌다.

하루 한 번 인적 드문 시간을 골라

천천히 집 주변을 걸었다.

가끔 한자리에 오래 서 있기도 했다.

먼 데를 보는 듯했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시간을 향해

귀를 기울이는 듯했다.

저녁볕 기우는 초겨울날을 골라

고요히 몸을 벗었다 신음 한 번 없이

갔다.

 

벗어둔 몸이 이미 정갈했으므로

아무것도 더는 궁금하지 않았다.

개의 몸으로 그는 세상을 다녀갔다.

 

 

*시인은 개에게서 달관한 선승의 모습을 본 듯하다.

 

개를 키우고 싶지만 한 생명을 끝까지 책임질 능력이 안 되어 포기했다.

그러나 개를 가만히 보면 사람과 관계를 맺는 일보다는 훨씬 호의가 간다.

 

무욕하고, 엄청난 고통이 아니면 내색하거나 엄살 부리지 않고, 오직 주인에게만 충직한,

죽음 앞에서 무연한 저 생명체를 보면, 인간의 동물에 대한 우월감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이 들기도 하고,

 

죽은 개에게 來世엔 인간으로 환생하라 빌어주고 싶진 않다.

인생이 뭐 그리 幸福한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