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

'3층 할머니'

sunnyyoung 2017. 2. 14. 13:24

            <북촌 바다 저녁 갈매기들>

 

 

            <3층 할머니>

 

                                  ㅡ 이선

 

바닷가 4층 건물의 3층에서 혼자 사는 할머니


인사를 하면 어디 사느냐고 물으신다

2층에 산다고 하면 당신과 같은 건물에 산다고

반가워 하신다


얼마 지나서 다시 인사를 하면

어디 사느냐고 물으신다

살기 좋은 곳에 잘 왔다며 반가워 하신다


어떤 날엔 현관 앞에서 우연히 만난 내게

공과금 고지서 뭉치를 펼치며 누구 이름으로

출금되는지 알아 봐 달라고 하며

귓속말로 자신은 두 번째 부인인데

남편이 죽었어도 전부인의 아들이 공과금을 내 주고 있노라며

내게 자랑스럽게 비밀을 털어 놓기도 했다.


겨울이 다 지나가는 햇빛 좋은 2월 어느 날

산책길에 뒤에서 할머니가 어디 가느냐며

같이 가자고 하며 말을 걸어 오신다

인사를 하니, 내게 어디 사느냐고 물으신다


만날 때마다 늘 나를 새로운 사람으로 대해 주시는

3층에서 혼자 사는 할머니를 만날 때마다

나는 늘 새로 태어난 느낌이다


아마 할머니도 아침에 홀로 눈을 뜨면

새 공책의 빈 칸 같은 마음으로

새로 태어 난 아기의 마음으로

날마다 새로운 하루를 맞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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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부하게 헛웃음 웃지 말자

사는 일이 결국 헛수고란 모순 앞에서

生이 주는 역설의 미학 앞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