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

습관, 바퀴벌레, 또는

sunnyyoung 2010. 3. 16. 01:50

 

 

 

 

 

어디서나 만날 수 있지만 아무때나 만날 수는 없는, 그러나 달빛이 미이라의 내장처럼 창백한 밤에 문득 불을 켜면 어둠 속에서 음모를 꾸미다가 들킨듯 화들짝하는 그를 만날 수 있다  포복한 자세로 죽은 체하는 녀석을 가만히 바라보면 슬슬 눈치나 볼 뿐 도망치지도 않는다. 어떤 날은 말끄러미 쳐다보기도 한다. 찬찬히 뜯어 보면 윤기나는 갈색의 정갈하기까지한 날개와 티끌 한 점 묻지 않은 말쑥한 수염을 달고 있다. 언제나 그렇듯 녀석과의 반복된 만남은 녀석의 존재를 인정하고 때론 친구처럼 편안해지고  더구나 민첩하고도 날렵한 녀석의 자태가 멋있게도 보인다. 이제 녀석은 대낮에도 나타난다.  영역을 넓혀 책상 서랍이나 식탁 위에서는 물론 침대까지 올라 와 잠든 얼굴을 핥으며 애정을 표현하기도 한다.

 

아! 나의 묵인이 너무 오래 되었다.

 

Mendelssohn Songs without words

Venetian Gondolier's Song

Murray Perahia , Pia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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