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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올레길을 걷다 올려다 본 하늘, 구름을 뚫고 나오는 눈부신 해>
<送年>
ㅡ 이선
묵은 시집들이 꽂힌 책장 속에서
누런 시집 한 권을 꺼낸다.
쥐오줌같은 시간이 지나간 흔적
줄을 치거나 통째로 접힌 장을 펼쳐 본다
*메마른 초여름 인간의 사막
*가슴 속에 외로운 절벽
*마음의 똥 한무더기 누지 못하는 외로움
.
.
.
*에나멜처럼 단단한 슬픔의 이빨
*어째서 내 존재를 알리는 데에는 울음의 기호밖에 없을까요?
*다가오지 마라! 내 슬픔의 長劍에 아무도 다가오지 마라
*녹슨 내 외로움의 총구는 끝끝내 나의 뇌리를 겨누고 있다
.
.
.
한때는 신앙이었고, 불이고 공기이며
아니 그냥 전부였던
검은 밑줄들과 어둠의 말들
한때는 입천장이 타는 뜨거운 국을 머금은 듯이
지나간 나날들
낡은 시집에 갇힌
어두웠던 시간의 침방울을 지우고
죽은 말과 허튼 관념의 대열에서 빠져나오리라
마지막 축제가 끝난 것처럼
이별하고 돌아 오는 것처럼.
산소처럼 먼지처럼
싱싱한 생활의 살과 뼈만을 위해서
돌아오리라
이제는 안다. 삶이
지루하고도 비루하고
쓸쓸하고도 가볍고
X같은 것이지만
결국, 아무것도 아닌 것임을.
*는 정호승, 최승자 시인의 시집에서 발췌한 귀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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