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

제주 바람, 시월

sunnyyoung 2013. 11. 21. 22:22

 

 

<섭지코지에서 찍은 성산 일출봉 사진>

 

<제주 바람, 시월>

                                ㅡ 이선

 

 

멀리 떠나 오니

분명해진다

 

눈 부신 햇살이 섬의 전신을 관통하는 가을날

무작정 길을 나서 걷다 보면

푸른 채마밭 사이를 이리저리 가로지른

검은 현무암 밭담처럼

부정형으로 구불거리며 살아 온 내력이

꼬리를 물고 따라온다

 

생각해보니

그것은 집착이고 미련이었다

必然이자 숙명이었다

외로운 건 다 마찬가지인데

혼자만 죽을 것 같은 엄살이었다

 

행복 없이 사는 일이 불행이 아니듯

뜨겁지 않다고 냉담이 아니듯

아무 생각하지 않고 사는 일이나

레비스트로스의 머릿속이나, 또는

사랑이거나 불륜이거나

예측한 방향으로 흘러가든, 흘러가지 않든

 

 

이 모든 것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아무것도 아닌 거라고

따스하고도 부드럽게 어깨를 감싸는

제주 속바람과

그제서야 처음으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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