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지코지에서 찍은 성산 일출봉 사진>
<제주 바람, 시월>
ㅡ 이선
멀리 떠나 오니
분명해진다
눈 부신 햇살이 섬의 전신을 관통하는 가을날
무작정 길을 나서 걷다 보면
푸른 채마밭 사이를 이리저리 가로지른
검은 현무암 밭담처럼
부정형으로 구불거리며 살아 온 내력이
꼬리를 물고 따라온다
생각해보니
그것은 집착이고 미련이었다
必然이자 숙명이었다
외로운 건 다 마찬가지인데
혼자만 죽을 것 같은 엄살이었다
행복 없이 사는 일이 불행이 아니듯
뜨겁지 않다고 냉담이 아니듯
아무 생각하지 않고 사는 일이나
레비스트로스의 머릿속이나, 또는
사랑이거나 불륜이거나
예측한 방향으로 흘러가든, 흘러가지 않든
이 모든 것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아무것도 아닌 거라고
따스하고도 부드럽게 어깨를 감싸는
제주 속바람과
그제서야 처음으로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