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

집 한 채

sunnyyoung 2010. 1. 27. 17:24

 

 

집 한 채 지었다

 

꼭 집주인 닮았다

 

작고 허름하고 기초공사도 부실한,

그리고 언제 완성 될 지 기약할 수 없는 집

벽에서 흙이 떨어지고

온통 바람구멍에 안과 밖의 냄새가 비슷한 집

 

벌과 나방, 이름 모를 새와 풀벌레 작은 생쥐 한마리까지 식구가 되어

절대 홀로 외로움을 즐길 수 없는 집

춥고 바람 부는 날 방 안에서 온갖 사유의 장작불을 지필 수 있는,

생각의 쓰레기를 말끔하게 태워 버릴 수 있는 아궁이가 있는

그런 집

 

행여,

누군가가 찾아 온다면

집의 크기같은 것에 무심한 이가 왔으면 좋겠는 집

누군가가 오고 싶다면

'누항사' 한구절쯤 욀 수 있는 이가 왔으면 좋겠는 집

 

왔다면

참숯불에 구운 소고기 등심보다

호박쌈에 찬밥 한그릇을 더 맛나게 먹으며

귀스타브 플로베르나 샤를 보들레르

연암 박지원도 이야기할 수 있다면 좋겠는 집

미지의 먼 곳을 그리워 하면서도 오래 함께 머물 수 있다면

더욱 좋을 그런 집. 그런 집을 짓고 있다. 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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