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한 채 지었다
꼭 집주인 닮았다
작고 허름하고 기초공사도 부실한,
그리고 언제 완성 될 지 기약할 수 없는 집
벽에서 흙이 떨어지고
온통 바람구멍에 안과 밖의 냄새가 비슷한 집
벌과 나방, 이름 모를 새와 풀벌레 작은 생쥐 한마리까지 식구가 되어
절대 홀로 외로움을 즐길 수 없는 집
춥고 바람 부는 날 방 안에서 온갖 사유의 장작불을 지필 수 있는,
생각의 쓰레기를 말끔하게 태워 버릴 수 있는 아궁이가 있는
그런 집
행여,
누군가가 찾아 온다면
집의 크기같은 것에 무심한 이가 왔으면 좋겠는 집
누군가가 오고 싶다면
'누항사' 한구절쯤 욀 수 있는 이가 왔으면 좋겠는 집
왔다면
참숯불에 구운 소고기 등심보다
호박쌈에 찬밥 한그릇을 더 맛나게 먹으며
귀스타브 플로베르나 샤를 보들레르
연암 박지원도 이야기할 수 있다면 좋겠는 집
미지의 먼 곳을 그리워 하면서도 오래 함께 머물 수 있다면
더욱 좋을 그런 집. 그런 집을 짓고 있다. 시방
'나의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쑤시개에 관한 想念 -S에게 (0) | 2010.02.28 |
---|---|
세탁소 앞을 지나다가 (0) | 2010.02.17 |
겨울 도봉을 오르면 (0) | 2010.01.24 |
11월 (0) | 2010.01.21 |
늙은 감나무 아래에 서면 (0) | 2010.01.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