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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시ㅡ 백석 '석양(夕陽)'

sunnyyoung 2015. 11. 5. 12:32

 

 

거리는 장날이다

장날 거리에 녕감들이 지나간다

녕감들은

말상을 하였다 범상을 하였다 쪽재피상을 하였다

개발코를 하였다 안장코를 하였다 질병코를 하였다

그 코에 모두 *학실을 썼다

돌체돋보기다 대모체돋보기다 로이도돋보기다

녕감들은 유리창같은 눈을 번득거리며

투박한 *북관말을 떠들어대며

*쇠리쇠리한 저녁해 속에

사나운 즘생같이들 사러졌다

 

*학실:'돋보기'의 평안 방언

*북관: 함경도

*쇠리쇠리한':눈부신'의 평북 방언

 

 

건장하고 숫컷 냄새 물씬 풍기는, 생활력 강한 북녁의 사내들이 황소라도 몇 마리 사러 나와,

함경도 사투리로 방금 보고 온 소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고 있을 것같은, 실제로는 절대 볼 수 없는

옛날 북녘의 장날 광경이 눈에 선연하게 그려집니다.

 

백석의 시 중에 좋아하는 시 중의 한 편이죠.

그의 시에는 이야기가 있고, 그 시절의, 우리로선 결코 만나볼 수 없는 북녘의 전통 민속과 생활이 있는,

글로 쓴 그림입니다.

 

1935년에서 1948년 사이에 발표된 시들이니 그 시절에 로이드 안경은 미국의 희극 배우 로이드가 쓰고 영화에 출연한데서

유래한 안경 이름이랍니다. 그런 멋진 안경들을 쓴 북녁의 사나운 즘생같은ㅡ지금은 만나고 싶어도 만나기 어려운 ㅡ

강인한 기가 넘치는 사내들이 연상됩니다. 

 

 

 <가곡 '명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