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

존재의 본질

sunnyyoung 2016. 6. 14. 20:17

                <바닷가 마을은 수시로 짙은 안개로 뒤덮인다.>

 

 

 

                <운 좋게도 가끔 바닷가에서 잘 수 있는 손바닥만한 집이 생겼다. >

                  

 

〈존재의 본질〉

 

                                                  ㅡ이선

 

텃밭에서 깻잎을 솎아 내거나 상추를 뜯다 보면

 

일생을 기면서 사는 벌레들과

수백년 생애를 오로지 한 뼘 흙에서 피고 지는 나무

뿌리가 없어 씨앗에서 나오는 순간부터 다른 풀에게 기생해야 하는 풀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하루 뿐인 하루살이들과 나와

적으로 만난다

 

인간의 말로 절망과 탄식의 언어로 구사되는 생명들

 

생각하면, 절망의 몸뚱이가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워 열매를 맺고

그 열매의 즙을 먹고 알을 낳고 씨를 퍼뜨려

새 어린 절망을 키우는 것

절망의 윤회,

존재의 본질

 

텃밭에서 날마다 만나는 생명들처럼

세상에서 이런저런 관계로 만나야 하는

나, 너, 우리는

무엇으로 살고 있는지

 

적과의 승부에서 살아남은

한소쿠리의 상추와 깻잎과 갖가지 풀에

쌈장을 넣고 볼이 미어터지도록 쌈을 싼다

 

어찌보면  쌈을 싸서 빈 뱃속을 채우듯

절망도 희망도 아닌

모두 제각각

살아 있으니 살아내는 일이거늘

텃밭에서도 적을 만들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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